['목타는' 아프리카를 가다] 차드의 한인들 "여기는 20세기···희망을 심어야죠"
현재 차드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2월 마지막날 한자리에 모였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근선 굿네이버스 차드지부장, 이은선 선교사, 조승호 목사, 윤원로 목사, 박 지부장의 두 아들 유희.철희군, 이시우 한인회장 손자, 손녀, 조 목사 큰딸 빛터. 차드 한인 2세인 이시우 회장의 큰딸 인순씨와 전재수(이상 36)씨 부부 가족과 본지 정구현(오른쪽) 기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세기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네이버스 차드지부 박근선 지부장의 아내 이수정씨의 첫 인사는 흘려 듣기 어렵다. 차드의 실상을 집약한 말이기 때문이다. 2월의 마지막 날 방문한 차드한인교회에서 접한 한인들의 생활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들이 구구절절 쏟아졌다.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차드와 카메룬을 오가며 선교활동을 하는 윤원로 목사의 경험이다. "아들이 5살 되던 무렵 배에 종기가 났어요. 참을성이 많은 아이인데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죠. 팔다리 붙잡고 힘껏 눌러 짰는데 '툭'하고 구더기가 튀어나왔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구더기는 망고파리(Tumbu Fly)라는 벌레의 유충이었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방에 주로 서식하는 벌레로 피부를 뚫고 들어가 산다. "가슴이 찢어졌죠. 아직도 흉터가 있어요. 아들 뱃속에 벌레가 사는 동안 아버지라는 내가 도대체 뭘 했나 울컥했었죠." 기본적인 인프라의 부재는 먹고 사는 문제를 위협하고 있다. 현지 한인들에 따르면 차드는 물가 대비 세계에서 가장 전기값이 비싼 나라다. 이시우 한인회장은 2개월에 한차례 내는 전기료가 200달러다. 200달러면 중산층 한달 월급이다. 그나마도 수도 은자메나를 제외하고는 전력이 없다. 해가 떠 있을 때는 섭씨 45도가 넘는 불볕 더위에 허덕이고 해가 지면 깜깜한 암흑에서 살아야 한다. 전기가 들어온다 해도 별 의미가 없다. 밥 먹듯 정전되기 때문이다. 자가 발전기를 들여놓아도 비싼 개솔린 값 때문에 하루종일 전기를 쓰긴 어렵다. 이 나라에서는 '시원함'이 부의 상징이다. 전기가 없는 수도 외곽지역에 사는 조승호 목사는 시원한 물을 먹기 위한 차선책인 '개스' 냉장고를 소개했다. 전기 대신 프로판 개스를 태워 냉매제를 돌리는 냉장고다. "이제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겠다 싶었는데 웬걸요. 외부에서 개스를 태우다 보니까 집안이 더워져요. 시원치 않은 냉장고 돌리자고 비지땀을 흘려야 하죠." 물도 없어 쌀뜨물을 모았다가 아이 머리를 감기고 생필품이 부족하다 보니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는 것은 차라리 군소리에 불과하다. 먹거리도 열악하다.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구하기가 어렵다. 현지 장터에서 산 주먹만한 사과 한알이 1달러였다. 한인들은 채소를 대부분 텃밭에서 재배한다. 하지만 날이 덥고 물이 없으니 쉽지 않다. 박 지부장의 아내 이씨에 따르면 배추나 고춧가루가 귀한 이곳에서 김치는 금치다. "한국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2개월이 걸려요. 고춧가루나 고추장 된장은 오는 길에 색이 다 변하죠. 그래도 감지덕지예요." 변변한 교육 시설의 부재도 차드 한인 사회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영어 학교가 없어서 14살이면 인근의 카메룬이나 케냐로 유학을 보내야 한다. 학비가 비쌀 수 밖에 없다. 불가항력적인 문제는 또 있다. 전쟁이다. 차드에서는 최근 2006년과 2008년 2차례 내전이 발생했다. 굿네이버스의 박근선 차드지부장은 당시의 아찔함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프랑스군 장갑차에 타고 이동하는 데 총알세례가 쏟아졌어요. 띵띵띵 소리가 나면서 '이제 죽는구나' 싶었죠." 세상의 악조건은 모두 모아놓은 차드에 과연 희망이 있느냐고 물었다. 조 목사는 "저는 그렇게 대답해요. 이 땅에 희망을 심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고 숙제라고. 어렵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것 아닐까요." 〈아프리카 차드=정구현 기자〉